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스쿠니 신사/논란 (문단 편집) == 총리 참배와 전범 분사 문제 ==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리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여 주변국과 [[외교]] 문제를 빚었다. 의외로 최초의 참배자는 진보적 성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미키 다케오]] 총리. 다만 그는 사적 참배라며 선을 그었고, 공물 역시 그의 사비에서 충당되었다. 그 이후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패전 40주년인 [[1985년]] [[8월 15일]] 최초의 '''공식 참배'''를 했고(다만 2배2박이 아닌 1배 등 비 [[신토]] 양식으로),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가 [[1992년]] 11월 일본 유족회의 압력으로 일정을 알리지 않고 후다닥 참배했다. [[1996년]] 7월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사촌이 합사되었다는 이유로 다시 사적 참배. 이렇게 전후 공식, 비공식 참배는 4번 정도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로 [[한국]]에 가장 유명하게 알려진 사람은 역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前 총리. 그는 [[한국]]과 [[중국]]의 반대도 무시하고 결국 취임 직후인 [[2001년]] [[8월 13일]]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방문하여 참배하였다.[* 원래 '''[[8월 15일]]''' 참배하기로 했지만 주변국의 반대를 의식하여 2일 앞당겨 참배하였다고 한다.] 그나마 패전 60주년인 [[2005년]] 8월 15일에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 "[[고이즈미 담화]]"를 발표하면서 좀 안 하나 했는데, 결국 다음 해인 2006년 [[8월 15일]]에는 총리 퇴임을 앞두고 기어이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방문하여 참배하였고, 주변국의 반대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반대 세력'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노골적인 불쾌감까지 드러냈다.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가 [[일본민주당(1954년)|일본민주당]] →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 초대 총재로 자리 매김 하였던 이후) 창당 이후 최초로 선거로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당(일본 1998년)|민주당]] 정권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햐토야마 정권은 야스쿠니 신사에서 A급 [[전범]]들을 모두 분리하는 방안 혹은 국립추도시설 건립을 검토하였으나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근 몇 년 동안 총리 자리가 바늘방석인지라 재임기간이 짧았던 탓. 실현 가능성도 적었겠지만, 그의 퇴임과 함께 이 해결은 물 건너 갔다. 2010년과 2011년 [[8월 15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세계대전에서 많은 국가, 특히 아시아 여러 국가에 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며 사죄했으며(2010년 [[간 나오토]] 담화), 신사 참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2011년 이 날 52명의 [[일본]] 여야 의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고,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은 간 총리 내각은 [[일본인]]이 아니다"라고 발언했으며, 민주당의 차기 총리가 되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재무상은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A급 [[전범]]들은 전쟁 범죄자가 아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결국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으로 정권이 갈린 [[2013년]] [[4월 23일]], [[일본]]의 [[국회의원]]들이 대규모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자민당, 민주당 등 168명이나 되는 [[국회의원]]들과 부총리 등 각료 3명이 참여했고, 66명의 [[국회의원]]이 대리인을 보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로, [[아베 신조]] 총리의 침략 부정 망언과 시너지를 일으켜 [[외교]]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심지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는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와 다를 바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2013년 10월, 미-일 정례 외교-국방장관 회담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역시 [[도쿄]]에 위치한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치도리카후치(千鳥ケ淵) 전몰자 묘원]]을 참배했다.[* 치도리카후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무명 일본군 병사들의 유골을 안치하며, 사설 종교기관 야스쿠니 신사와는 달리 엄연한 국가시설이다. 때문에 [[일본]]이 진정으로 자국 전몰자들을 위한 추모시설을 원한다면 야스쿠니 신사보다는 차라리 치도리카후치가 더 적합하다는 평가가 제기되어 왔다.] 두 장관의 참배는 [[미국 정부]]가 야스쿠니 신사를 [[알링턴 국립묘지]]와 동격으로 주장한 [[아베 신조]] 내각의 주장을 반박하는 무언의 메시지라는 평가를 받았다. 애초에 이 A급 [[전범]] 합사 문제에 '''[[쇼와 덴노]]조차 상당히 불쾌하였고, 이후 단 한 번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았다'''.[* [[히로히토]]는 나중에 [[중화민국/국민정부|중국]]의 의지로 전범재판에서 사실상 [[2차 세계대전]]에서 [[전범]]으로 처벌받아 사형 내진 폐위당했을 뻔 했지만 [[미국]]의 의지로 다행히 사면받아 전범재판에 기소되어 처벌받아 사형당하지 않고 목숨을 간신히 건졌을 뿐이니 참배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자기 목이 덜렁덜렁 했을 테니까. 물론 여기 묻힌 놈들이 고운 놈들도 아니고, 쓸데없이 전쟁을 벌인 결과 참패하여 '''[[히로히토]]의 목을 간당간당하게 만든 놈들'''이므로 개인적으로는 싫어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A급 전범 합사 이전에는 8번 정도 참배했다.)] 이 정도면 [[천황]]에게 충성한다는 것은 그저 형식적인 명분이고, 사실은 천황을 제대로 엿먹이는 시설이다. 다음 천황인 [[헤이세이]] 덴노 역시 황태자 시절에는 몇 번 참배하였으나 합사 후에는 참배한 적이 절대로 없고, 결국 [[헤이세이 시대]] 동안에는 한 번도 참배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 외의 신사 참배 자체도 영 호의적이지 않은 쪽이고. [[나루히토]] 덴노 또한 신사 참배를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A급 전범으로 사형당한 [[기무라 헤이타로]]의 아들인 기무라 타로도 A급 전범 신주 분사를 신사 측 주도로 실현시키려고 했다[* 반면 기무라 헤이타로의 부인이던 기무라 카누이는 전범자의 유족회인 <시라기쿠(白菊) 유족회>의 회장을 역임하거나 A급 전범들만의 유족회인 '칠광회(七光会)'를 운영하는 등 전범자들의 명예회복(?)에 나섰다.]. 2017년에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정권 시절에 중국이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추도시설 설립을 타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에는 참배행위 자체가 일본 법에 문제될게 없음이 확인 되었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2013년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가 위헌이라며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에서 아베 총리가 승소하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계 뿐만 아니라 법계에 걸친 일본 사회전반에 걸친 문제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9769263|#]] 현재까지는 현직 총리가 직접 참배까지는 안하고 공물로만 보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